월남일기 17
내가 만약 입대를 안 했다면
16년 학창생활을 마감할 즈음인 듯 하다.
2월말. 지금 나의 동기들은 며칠 안남은 학위수여식을 기다리고 있겠지.
난 뭐냐?
무거운 철모, 후줄구래 작업복, 거추장 스러운 반도에 덜렁덜렁 수통
탄입대, 대검, M16 소총, 국방색 양말, 쟝글화,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는 전혀 아닌듯 하다.
그 친구들이 부럽다.
물론 그중에 많은 친구들이 내가 지금 하고있는 이 코스를 따라 오겠지만
그들은 하나의 대단원을 종결 지은자들 아닌가.
나와의 갭이 상당히 넓을듯 하다.
나는 잃어만 가고 있고, 그들은 쌓아가고 있는듯 하다.
내가 생각하던 나와는 너무 다른 내가 지금 여기 있는듯 하다.
말끝마다 달리는 욕들,
모순 같지만 단체생활에서 몸에 익히는 자기보호의 이기주의,
참아야 할일은 못참으면서, 해야 할것들은 참는 어리석음들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존하기 위한 자기본능인가?
제대하면 반납해야 할 많은 단점들이 체질화 되어 있는듯 하다.
월남일기 18
넌 어떤 성향의 여자가 좋으냐?
요즘 그런 질문들을 종종 받는다.
뭐 별로 그런것 생각해 본적 없다고 하면
그럴리가,,,하며 재차 묻는다.
할수 없이 하는 대답은,,,,
사람이 마음에 들려면 항상 무슨 특성이 있어야 하냐,,
웬지 모르게 그냥 끌리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이렇게 물탄듯한 대답을 하곤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좀 흐리멍텅한 말이다.
구체적으로 만들어 보려고 해도 정리가 안된다.
외모..? 이뻐야,,,,,
학력... 좋아야,,,,,
머리.... 좋아야,,,,,
태도.... 남에게 칭찬을 받는,,,,
소신
지극히 평범한 내용들의 나열이다.
그래도 ,,,,,
눈은 쌍커플 없는 ,,
160cm 45kg
피부는 관심 없고,,
공부는 평범한 학교, 반에서 10등 정도,,,
이정도는 정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좋아지면 다 좋아 보이는것 아닌가?
월남일기 19
고국에는 봄이 오고 있겠지
봄냄새가 나고 있겠지
겨울이 힘을 잃었겠지
양지가 따뜻한 봄기운을 보여 주겠지,,,
부평(철수후 들어갈 곳)에서 서울가는 버스를 타면
기분이 무척 좋겠지.
나에게 꼬리가 있다면 엄청 흔들고 가겠지.
월남일기 20
한숨 잘 잤다.
단잠이었다.
비록 꿈은 전쟁 꿈이었지만,,,
자다 일어나니 으시시 춥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한대 빼문다.
연기를 훅 뿜어내며
고향생각을 해 본다.
월남일기 21
호박꽃에도 가시가 필요한가?
장미도 아닌데,,,,
분수에 맞게 행동하란 말이겠지.
잘나지도 못한자가 자기도취에 빠져서
정도 이상의 행동을 한다.
꼴불견이란거지.
세상에는 이런 환자들이 너무 많다.
이런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정확히 판단 한다면
아마도 자살이라도 할듯 하다.
월남일기 22
전쟁만 없었다면 무척 살기 좋고 아름다운 나라다.
첫날 배에서 내려 군트럭으로 여기까지 오는동안
도로변의 이국적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야자수 나무의 축 늘어진 잎사귀
사이사이 보이는 바나나 나무와 가옥들,
파란 하늘에 그림같은 바다,
엽서를 보는듯한 풍경이었다.
이런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이 부대에 와서 높은곳에 올라서서 내려다 보는 풍경 또한 천하일품.
넓은 평지에 군데군데 모여 있는 푸른 숲
그늘속에 묻힌 마을의 얼룩덜룩한 색체
물가를 거니는 물소때들의 한가한 움직임
아오자이를 걸치고 바람에 흔들리듯 걷는 여인들
전쟁만 없다면 정말 아름다운 나라다.
월남일기 23
고국에 가면 3월이다.
3월 봄바람, 따뜻한 바람일까?
여름에서 몰려 들어가는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쌀쌀한 추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발발 떨고 있는 군인.
월남일기 24
연병장에 커다란 금을 그어 놓고
비행기 타는 연습을 한다.
줄서서 승선넘버대로 금안으로 들어가 위치로,,,,
( 군의 이동장비로는 철수가 정해진 일정안에 불가능 하여
미 국방성에서 민간항공기를 전세내어 비행기로 철수를 했다. )
대대장 명령으로 중대장이 교육을 시키고
선임하사가 지휘봉 들고 소리를 빽빽 지른다.
' 선임하사님은 비행기 타봤어요? '
히죽히죽 질문을 하니
눈을 흘기며 지휘봉을 쳐든다.
' 이자식은,,, 중대장도 못타봤어 임마,,,'
모든 병사들이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기대가 크다.
월남일기 25
박스검사,,,
중대 단위로 귀국 박스를 검사한다.
일반병인경우 2인당 B박스 하나,,,,
주변을 보니 이것 저것 많이도 샀다.
카셋트는 거의 100% 산듯 하다.
난 짐이 하나도 없다.
겨우 며칠전 피엑스 가서 주머니 털어 10불짜리 안마기 하나 샀다.
중대장이 '이자식은 수당 받아 다 썼구만,,,' 하면서
월남까지 왔다가 챙피하게 짐도 없이 가냐고 잔소리를 한다.
낭비가 심한 놈은 아닌데 수당이 다 어디로 갔나? 모르겠다.
월남일기 26
월남 사람들 에게는 매캐한 냄새가 난다.
한국인에게도 우린 모르지만 마늘냄새 비슷한 냄새가 있다고 한다.
창경원의 동물원
잡 짐승들 근처에 가면 노린내 같은 잡냄새가 많다.
전에 이런냄새를 맡고는 사람처럼 깨끗한 동물도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이 많이 틀린듯 하다.
우리처럼 사워 하고, 양치 하고, 손톱발톱 깎고, 옷 갈아 입어도
이렇게 냄새가 나는데, 짐승처럼 산다면?
스컹크 이상의 냄새를 풍기는 동물이 아닐까?
월남일기 27
고국에 가면 여자들이 얼마나 이뻐 보일까?
한동안 무뎌진 시각에 판단력도 흩으러 져 있을듯 하다.
백양로를 생각해 본다.
똑바로 뻗은 직선길 양편을 따라
줄지어 올라가는 책을든 행렬,
그 대열에 빨리 끼어 들고 싶다.
군복, 얘나 쟤나 모두가 시푸르한 ,,,
개성이라곤 찾아볼수 없다.
구두 반짝, 밥풀데기 삶아 풀먹여 다리고,,,,
멋부려 봤자, 군인이다.
잘하든 못하든 ,,, 그냥 군인.
내 하고 싶은대로 입고
내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고,
내가 잘못한건 내가 책임지고,,,,
기다려지는 생활이다.
월남일기 28
드디어 그날이다.
부대를 떠난다.
연두색 막사에 남겨진 추억들이 많은데,,,
그렇게 가고 싶던 고국인데
막상 날이 닥치니 지난날이 자꾸 어른거린다.
해가지는 시각에 의자들고 2~3km 걸어서
사단본부 연병까지 위문공연을 보러가던 생각도 나고,
그 다음날 출연진이 부대를 돌며 기념사진 같이 찍고,
모기 날라 다니는 본부앞 연병장에서 영화 보던것,
밥타먹으러 가는중 쓰레기 소각장 지나는데
따지 않은 시레이션 깡통이 폭발 하는 바람에
총소리로 오해 놀랐던것,
맥주 박스로 사다 놓고 회식하다보면 빈깡인지 뭔지 들어 봐야 알고,,,
크레모아 떡을 연료로 라면 끓여 먹고,
막사 뒤 숲속에 버려진 실탄들 가져와서 몸에 걸고 사진,,,
이발소 가서 이발사 면도기로 면도 하던 생각도,,,
등등...
이일 저일 생각이 난다.
지나고 보니 참 좋았던 시간들 이다.
나트랑 공항까지 월남 민간인 버스로 이동 한다.
확실히 여기사람들 등치가 작다.
버스 좌석이 5열,,아주 좁다.
미군이 생각이 난다. 어릴때 미군들 보면 등치가,,,,
우리도 그렇게 보였을까?
나트랑 공항 아스팔트 활주로.
뜨거운 지열에 푹푹 찌는데
우리는 동내의 바람에 야전잠바와 상의를 옆에 끼고
4열 종대로 뜨거운 활주로에 앉아서 비행기를 기다린다.
고국에 가는 길,
그것보다 더 설레이는것은
생전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크다.
더구나 여자 스튜이디스가 탑승한 민간비행기다.
음료 달라면 다 준다고 한다.
그런데 영어로 해야 한다. 그게 영 걸린다.
으시시 쫄면서 타는 우리만큼
그 미국여자 스튜어스들도 으시시 할 듯 하다.
비행기 가득찬 군복들, 게다가 얼굴은 민짜에 그놈이 그놈.
콜라를 들고 복도를 지나는 그네들의 눈빛에 그게 보인다.
누가 시킨건지를 몰라 쟁반들고 어쩔줄 모른다.
창밖을 본다.
구름이 바다에 붙어 있다.
처음 올라온 고도에서 내려다 보는 처음보는 풍경,
해가 지는 황혼 색도 다른것 같다.
기착지는 수원 비행장이다.